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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포스트::그린스보로 한인 교육 문화 센터 개관에 부치는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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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그린스보로 한인 교육 문화 센터 개관에 부치는 단상(斷想)
기사입력: 2016-09-11 14:10:23  ()

글: 정동근


1903년 1월 13일 미국 화물선 Gaelic 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온 102명의 한국의 젊은이들이 하와이 섬 Pineapple과 Sugarcane 농장에 노동 이민으로 도착한지 1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4,000여명의 한인 교포들이 모여 사는 North Carolina 주 Greensboro 인근 Triad 지역에 금번 한인회 한국학교 및 한인 연장자회가 합심 단합하여 우리의 소원인 한인 교육문화센터를 마련하여 한 지붕 아래서 활동하게 된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내외 귀빈을 모시고 9월10일 오전 11시부터 거행되는 개관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인 교육문화센터는 우리 이민 1세들과 한인 후손들을 위한 Community Center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센터는 결코 한인 교포만을 위한 폐쇄적 ‘Korean Enclave’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육문화센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첫째 이 고장의 젊은 한인 후손들에게 다문화 미국사회에서 identity 즉 정체성을 확립 조장하는데 필요한 문화적 인프라를 제공하며, 둘째 다양한 고유 문화행사를 통하여 Triad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의 즐거운 만남의 장을 제공하며, 셋째 주류사회는 물론 다른 소수계 이민 사회와 전시회, 세미나 기타 행사로 소통하고 교류하여 한국역사 고유문화 미풍양속을 알려서 Korean American community의 위상을 높이고 다문화 미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transculturation 역할도 기대합니다.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라고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스스로 묻는 질문에 나 자신의 참된 자아(自我)의 실존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글과 한국역사, 효도정신, 예의범절, 인간관계에서 신의를 존중하는 미풍양속 등 고유 문화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젊은 한인 후손들이 스스로 나는 Korean-American이라는 Identity와 자긍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문화적 세계화(cultural globalization) 시대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Pops, 한국 영화 및 예술 공연 등 한류(Korean waves) 문화에 관한 정보 소개와 초청 공연도 한인 젊은 후손들에게 Korean-American 이라는 자존감과 Identity 계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라 하는 거대한 용광로 (melting pot) 같은 사회에서 Identity가 없는 사람은 자긍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확고한 Identity를 가진 자는 다문화사회에서 이른바 변두리 인(marginal man) 증후군(syndrome)이라 할 수 있는 자기비하 열등감 자기혐오 피해 망상증(paranoia) 같은 complex에 시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삶의 도전에 혼신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삶의 활력소를 공급받게 됩니다.

필자는 한국인의 정체성만을 강조하여 미국 주류사회에 융화하여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 이민 후세대들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815년과 1820년 사이에 가뭄으로 인한 기근과 영국의 압정을 피하여 550만 명의 Irish들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 왔습니다. 그들도 우리 한인 이민 1세들처럼 젊은 후손들에게 Irish Identity를 보존토록 Irish Language School을 개설하고 열과 성을 다하여 Gaelic이라는 Irish 언어, 역사, 공한 전통과 문화를 교육하였습니다. 후손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black hole에 흡수동화(Assimilation) 되지 아니하고 Irish 고유의 전통인 ‘사내다움’(manly Irish Identity)을 상실하지 않도록 온갖 힘을 다하였습니다. Irish 이민 1세들의 지나친 배타적 Irish enclave 집단생활은 마침내 미국 주류사회의 미움과 반발을 사게되어 당시 미국 6대 대통령 John Quincy Adams (1825-1829)의 다음과 같은 엄중한 경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The Irish come to… a life of labor – and, if they cannot accommodate themselves to the character, moral, political, and physical, of this country… The Atlantic is always open to them to return to the land of their fathers. … They must cast off their European skin, never to resume it. They must look forward to their posterity rather than backward to their ancestors.”

한 개인의 정체성은 외견상으로는 인종이나 피부색깔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겠으나, 이들만이 결정적 교인이 아니며 자아의 혈통, 종족, 언어, 성장 개병과 환경, 역사, 전통 문화 등의 복합적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형성된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44대 대통령 Barak H. Obama도 그의 자서전: Dreams from My Father-A Study of Race and Inheritance(1955)에서 “my identity might begin with the fact of my race, but it didn’t, couldn’t, end there.”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Africa Kenya 출신 하와이 대학교의 흑인 유학생과 백인 여학생 사이에 혼혈아로 태어나 백인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 Identity 문제로 고민하면서 젊은 학생시절에 오랜 세월 동안 방황한 사실을 꾸밈없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뿌리(Roots)를 찾으려고 대학 졸업 후 그의 아버지의 나라 Africa Kenya를 방문하여 Kenya에서 출생하고 영국에서 유학한 이복 누이동생 Auma Obama와 함께 아버지의 일가 친척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작고한 생부와 조상들에 대한 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Kenya에서 Safari도 참가하여 엽총을 들고 큰 나무 위에서 밤을 지새는 그의 조상들의 수렵풍습의 경험담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초 그린스보로 한인 장로교회 창립 40주년 기념행사 때 지급한 장학금 수상 학생들의 Essay에도 identity 문제로 고민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은 “Growing up in America as a Korean-American, I faced many hardships. I was belittled because I was ‘different’ and underestimated simply because I was Asian…”이라고 했습니다. 한 대학생은 “… living and growing up in America, facing the question of which side of their identity takes precedence, their Korean heritage or their American environment. And sometimes people sacrifice parts of their true selves in order to fit in.”이라고 고뇌(苦惱)를 표하고 있습니다. 1973년 7월 초순에 Detroit에서 Greensboro에 옮겨온 필자도 다음해 하루는 아들녀석 Ken을 유치원에서 pick up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두 손가락으로 양눈 밑 눈꺼풀을 밀어내리는 시늉을 해보이면서 아이들이 자기를 이렇게 조롱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양손 손등을 나에게 내밀려 하는 말이 “Dad, why is my skin color different from that of my classmates?”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갑작스런 질문에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 합니다. “Ken, you know what? God created everything in this world to praise himself. Imagine that God created only one color of flowers or birds. Do you think the world would look beautiful? That different skin colors t make this world look beautiful.”라고 했더니, Ken은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머리를 내 가슴에 푹 파묻으며 나를 양팔로 꼬옥 포옹하는 순간 identity crisis를 모면하였습니다.

필자가 1975년 서문원 박사와 함께 한글학교를 시작하여 10여년간 매주 토요일 어린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국 역사와 전통과 미풍양속을 가르쳐서 자긍심과 identity를 심어주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한 일을 상기하면 무척 흐믓함을 불금합니다. 당시의 어린 학생들이 장성하여 지금은 40대의 중견 미국시민으로 의사, 변호사, 교수, 엔지니어, 사업가, 공무원 혹은 Hollywood 연예인 등으로 주류사회의 각 분야에 진출하여 Korean-American으로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젊은 한인 후손들이 미국에서 태어나서 혹은 부모따라 어릴 때 이민와서 자라면서도 한국의 자랑스런 고유문화와 전통이 현지 미국문화에 흡수동화되어 한인 후손이란 identity를 상실한 Korean-American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유와 기회균등의 나라 미국에서 우리 한인 후손들이 미국 문화의 특성인 독립적 사고와 자립정신, 모험적 기업가 정신, 관용과 봉사정신, 인권 존중, 개인의 privacy와 individualism을 존중하며 타인과 이웃의 행복과 성공을 부러워하되 시기 질투하지 앟는 여유롭고 느긋한 미국문화의 특성을 수용하고 융화하여 한국의 전통 문화와 미국 선진 문화의 장단점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하고 채장보단(採長補短)하는 문화변용(acculturation) 되기를 바랍니다. Einstein은 부러워하되 시기하지 않는 미국 국민성(American trait)에 매료되어 미국 시민권(citizenship)을 취득했다고 고백했습니다.

Assimilation(동화)와 Acculturation(문화변용)은 그 차이가 미세하여 분간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두 개념은 다른 문화간의 접촉으로 인한 융화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동화(同化)는 이민자가 보유하는 original culture가 미국문화에 흡수 동화되어 상실되는 현상을 의미하지만 문화변용(文化變容)은 original culture의 특성을 보전 유지하면서 두 이종문화 특성 간의 지속적 상호전달(inter transmission)과 상호차용(intercultural borrowing)하는 과정을 통해서 융화하여 보다 성숙하고 업그레이드란 새롭고 조화된 문화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자는 우리 한인 후손들이 미국 문화에 흡수동화 되기보다는 문화변용(acculturation without assimilation) 되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우리 한인 이민 후세들이 자유와 기회균등의 나라 미국에서 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 문화의 특성과 미국문화의 특성이 융화 조화하는 acculturation without assimilation을 통하여 제각기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재능을 각 분야에서 자아실현(自我實現)하여 보다 위대한 미국과 세계 발전에 기여하기 바랍니다. 우리 한인 교포 후손 가운데는 일찍이 제2차 세계대전 전쟁영웅 김영욱(1919-2005) 미육군 대령, 1948 London Summer Olympic과 1952 Helsinki Summer Olympic에서 연속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을 수상한 Sammy Lee와 최근에는 Dartmouth 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세계은행(World Bank)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Yong Kim 박사 같은 인물도 배출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한인 교육문화센터를 거친 우리 젊은 후세 가운데 장차 Barak Obama 같은 Korean-American이 배출되는 큰 꿈을 그려봅니다.


필자소개: 1964 East-West Cultural Center Grantee로 도미 유학, 그린스보로 한인교육문화센터(KECCGG), Greensboro Symphony Orchestra(GSO), International Council for Korean Studies(ICKS), Washington D.C. 이사회 이사(2016년 현재), 그린스보로 한인장로교회(1976년 창립) 원로장로, North Carolina AT&T State University(1973-2008) 은퇴교수(경제학), 그린스보로 한글학교, 그린스보로한인회, 그린스보로 연장자회 이사장 역임, Korean-American Economic Association(KAEA) Secretary General(1993-1994) Vice President(1998-1999) 역임,, Carolina International Cultural Council(CICC) President(1993-1995 and 2010-2012) 역임,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1993-1997)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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