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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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성성모
기사입력: 2019-01-15 21:00:10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성성모(애틀랜타문학회 회원) 결혼도 못 해 본 39살 남자 조카 애가 암 투병을 하다가 지난달에 갔다. "암세포와 공생을 하는거죠 뭐" 하고 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애다. 정작 임종이 가까워지자 아버지 보고는 도와달라고 애원을 하고 어머니한테는 무섭다고, 무섭다고 했다. 2년 전에는 친한 친구로, 신실했던 장로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삶에 미련은 없지만 주님이 더 있게 해 주신다면 더 살고 싶다고 속내를 내보였다. 어떤분은 다른 사람들은 80을 넘겨 사는데 나는 왜 75세에 가야 하냐고 불평을 하면서 갔다. 세상에 나왔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 살게 되고 산자는 죽게 마련이니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하고 마음 준비를 하게 된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까에 꼭 집어 정답이라는 것은 없지만 참고서들은 주위에 널려있다. 쏘크라테스(470-399 BC)는 죽음을 준비하는 학문이라는 철학에 원조라고 할수있다. 그는 69세에 독배를 천연스럽게 들고서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제자가 제발 고집을 부리지 말고 잠시 다른 나라로 피해있으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하자 “이생보다 더 좋은 내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내가 옆집 닭 한 마리 꿔먹은 것 잊지 말고 갚아라” 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생을 마감했다. 쏘크라테스보다 한 세대 전에 살고 간 공자 (551-479BC)는 이 세상일도 잘 모르는데 내생을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지만 망자에 혼이 있어서 제사를 받는다고 생각한 장례 의식에 대가였다. 같은 세대에 살았던 석가(563-483BC)는 진리를 등불 삼아 살라고 했고 해탈을 하여 극락에 이를때 까지 끝없는 윤회를 하게 되니 업보를 없애라고 했다. 500여 년 뒤에 태어난 예수(0-33AD) 는 유일신에 영적인 세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말을 남겼다. 재미있는 사실은 2000년- 2500년 전 사람들이나 현대인들이나 사는 환경은 많이 변했지만 느끼는 희로애락이나 생각에 범주는 거의 변한것이 없다는 것이다. 옛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영원을 사모하고 어떻게 살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생로병사에 법칙을 따라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인생은 도저히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에 장자(369-289 BC)는 제물론에 이런 내용을 남겼다. 어리석은 사람은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줄 모르고 꿈속에서 또 꿈을 꾼다. 깨어난 후에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안다. 똑똑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깨어났다고 믿고 있는 그곳이 아직도 꿈속임을 알고 있다. 똑똑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 역시 자신이 꿈속에서 잠꼬대를 하고 있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소동파도 인생은 한바탕에 꿈이로라 고 했고 다윗왕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모두 헛되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사는 3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부질없는 꿈일수 밖에 없다. 우리가 아는 세계 보다 고차원 세계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고, 알고, 듣고 느끼는 세계가 다는 아닐 수있지 않는가?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르고 베짱이가 내년을 모르듯이 한 끝해야 120년 수명을 가진 우리에게 영생을 말해 보아야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말을 해도 우리 차원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느낄 수 없고, 경험을 해보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많다. 어르신이 인생 경험을 아무리 진실하게 말을 해 주어도 젊은이들은 깨닫지를 못해 똑같은 잘못을 계속하고 사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신약 대전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전에서 환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더 이상 하나님에 영광을 내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절필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4차원 세계, 영의 세계를 느껴보았는가?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살면서 영의 세계를 느꼈을 것이다. 나도 우리가 모르는 영매에 세상을 접한 적도 있고 영적인 부름을 받은 적이 있다. 수 십년 전 병무청에 용무가 있어 창구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앞에 선 박수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집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는 신이 내려 몸이 약해 보충역으로 병역을 면제 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최영 장군의 신위를 모시고 있었는데 내 과거를 잘 알고 있었고 미래도 꿰뚜루고 있었다. “네가 바라는 대로 큰 물을 건너 갈테니 걱정하지 마라. 나라 녹을 먹고 살게 될 것이지만 권력은 잡을 생각도 마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네 마음에 흡족한 인생은 아닐것이다” 라고 말해 주었다. 그 당시 서민들에게는 어려웠던 신원조회와 병무청 허가가 생각보다 순조롭게 나와 제날짜에 출국을 했다. 취직을 하려는데 가는 곳마다 학력이 높다고 써주지를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학위는 있지만 영어가 부족해서 써 주지를 안았던 것 같은데 캠핑을 해가며 큰 도시들을 섭렵하다 포트랜드에서 돈이 떨어져 주저앉았다. 결국 임시직 하급 공무원으로 시작을 해서 임용시험을 쳐가며 중견 토목기사가 되고 어머님을 모셔오고 방언 은사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가진 것도 없고 출세를 한것도 아니지만 더 이상 내 인생이 더 좋을 수가 없다고 느끼게 되고 자연들도 모두 나를 위해 축복 해 주는 것 같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을 했던 기억이 있다. 영에 세계를 보고 멋있게 살고 간 한 인간이 있다. 신약성경에 반 이상을 쓴 사도바울 이야기이다. 그는 사후 세계를 환상으로 본 후 이 세상에 잣대를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에 자신을 맞추고 인생을 살다 갔다. 그 세대에 학자였던 바울은 역경을 헤쳐나가며 인간적으로는 고난에 길이었지만 후회함이나 낙심함이 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마친 바울을 나는 무척 존경한다. 결국은 죽을 때 우리의 태도는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믿음을 보험으로 들어놓고 죽어서 천국이 있으면 들어가고 없으면 그만이라는 미지한 믿음은 전혀 하나님, 창조주가 바라는 영혼은 아닐것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대로 살지 않는 많은 목사님을 비롯한 교인들은 자기도 천국을 못 들어가면서 남들까지 못들어가게 막는 폭이 된다. 예수님에 성품을 닮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못된 자기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모본이 되지 못 되는 그들은 많은 사회인들에 손가락질을 당하고 초신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괴테는 그의 역작 파우스트를 통해 주인공이 영혼을 악마에게 팔기까지 했지만 그 영혼을 구원함으로써 “노력하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있다” 는 점을 강하게 표현을 했다. 우리도 인생 목표를 하나님에 맞추고, 100%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면 어떻게 죽을 것이냐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구원에 확신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을 준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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