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에게 바란다 3. 자신만의 루비콘을 건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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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은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작은 강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 갖는 것은 2000년전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국법을 어기면서도 원했던 로마 개조를 위한 결단, 즉 군사반란의 대명사이자 역사 전환의 대명사인 것이다.
오늘날 카이사르는 칼렌다, 도시인프라, 진정한 귀족주의(영웅)의 상징이자 유럽 제왕직의 이름(Kaiser, Tsar)이기도 하다. 천년후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시인 단테는 [신곡]에서 무간 지옥을 묘사하면서 카이사르의 암살주범 카시우스와 부르투스를 예수님의 배신자 유다와 함께 얼음위에서 루시퍼에게 뇌를 먹히는 천년 저주로 벌하고 있다.
카이사르의 일생은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로 명확히 구분된다. 청년기는 몰락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부친을 일찍 여의고 소년가장이었고, 당시 술라가 이끄는 정적 제거의 대상이 되었으나, 여사제들의 구명에 술라가 제안한 이혼요구를 거부하고 해외로 망명하는 고난기였다.
술라가 죽자 돌아온 카이사르는 변호사로서 술라 부하들인 실세들을 무리하게 고소하여 다시 망명을 하기도 한다. 그후 정치가 안정되자 귀국하여 원로원의원을 시작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공직에서 그는 장신의 품위있는 인물로 각종 스캔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40에 접어들 무렵 공화정 말기 백년에 걸친 내전과 혼란을 종식할 새로운 체제를 위해 군사영웅이 되고자하는 승부를 건다. 당시 로마는 장기간 혼란에도 불구하고 공화정을 지키려는 대중의 의지가 견고하여 군사영웅의 카리스마로 변혁을 시도코자한 것이다.
갈리아원정으로 알려진 그의 무훈은 자신이 쓴 [갈리아전쟁기]로 불후의 고전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에 8년에 걸친 영웅적 스토리는 당대의 아이콘이 되나 그의 위험(?)을 알아본 원로원은 3두정을 깨트리고 집정관의 길을 최종권고로 거부한 것이다.
역사는 카이사르는 루비콘을 건너기전 휘하 장병들앞 마상에서 잠시 망설였다고 한다. 아마도 합법(순응)과 불법(도전)의 사이에서 최소한의 갈등을 위한 연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결행은 결국 4년에 걸친 내전으로 이어졌으나 역사는 카이사르를 로마 재건의 승자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역사는 루비콘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샤를 마뉴가 이슬람의 유럽침공을 막기위해 봉건제를 도입한 것, 나폴레옹이 대혁명의 와중에서 쿠데타와 황제직을 맡는 것, 엘리자베스여왕이 스페인과 맞서 전쟁을 선택한 것, 심지어 히틀러의 야욕에 맞선 처칠의 결단(2차대전)이 유사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이사르의 결단은 동양에서도 발견된다. 왕조의 붕괴와 새로운 왕조의 탄생은 언제나 내전과 혼란으로 이어졌고 그 끝은 언제나 새로운 왕조였다. 때로 유목제국의 침공이 왕조의 파괴로 이어지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결단은 현대 한국사에서도 발견된다. 일테면 이승만대통령의 경우, 중형을 각오한 왕조에 대한 반대(저항), 장기간 옥중을 끝내고 미국행을 선택하고, 기나긴 망명 항일운동과 이어진 귀국과 독립국가 건설, 그리고 이어진 6.25와 전쟁복구가 바로 연속적 루비콘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의 경우에는 5.16, 대통령 선거, 한일국교정상화(1965), 월남전 참전, 유신체제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이러한 루비콘 외에도 고속도로건설, 종합제철소, 조선, 자동차, 화한단지 및 신도시 건설, 산림녹화 등 루비콘에 준하는 결단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대통령이 겪은 루비콘, 즉 국가를 위한 대결단은 민주화 이후 급격히 자취를 감춘다. 오히려 부정부패, 외교실패, 자원배분의 위기, 정국불안정으로 대표되는 지도자 리스크가 주된 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화 30년이 경과한 지금 한국은 '한국병'이란 국가리더십의 총체적 실종이 가져온 엄청난 위기, 즉 미증유의 반미공산주의 도전에 봉착하고 있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주도한 '중립적 민주주의'는 문재인 이후 국가절멸(폭망)로 직결되는 사회주의(종북 숭중) 편향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미래 지도자는 민주화의 실상을 통찰하고 국가정상화를 위한 대개조의 장정으로 나아가야할 용기와 헌신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일컫는 마쓰시타 고노스케(파나소닉 창업주)는 "변화를 시도하여 실패한다면 더욱 본질적인 변화를 꾀하라"고 말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