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미국


[기고문] 의사는 전문직 匠人이지 공무원이 아니다.

입력: 2024-03-14 22:37:19 NNP info@newsandpost.com

▲김태형 에모리 의과대학 명예교수


며칠 전 마르코 글방과 내 고등학교 동기의 글방 그리고 문인협회의 글방에도 의사들을 돈만 아는 이익집단으로 악마 화하는 글이 올라와 참지 못하고 펜을 든다. 나는 의사다. 그리고 돈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의사로서 부끄럼 없이 미국에서 잘살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 왜 한국의 의료파동에 왈가왈부하느냐고 따지는 분도 있을 것 같아 나를 잠깐 소개하겠다.
나는 미국에서 의대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1997년부터 8년간 아산병원에서, 2005년부터 3년간은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소아 혈액 종양/골수이식 분야에 책임자로 근무하며 소위 말하는 필수의료부서에서 병원에 계속 적자를 안겨주며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과의 한 교수는 30~40대 의사들의 봉급이 3.5억 내지 5억으로 터무니없이 높아 이들의 수입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나의 연봉은 모든 성과급을 합치더라도 1억 원 겨우 넘었다. 미국에서 받던 연봉보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인간적인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라면 그곳이 한국이건 미국이건 그 누구도 타인 집단을 향해 욕을 쏟아붓지 않으며 또 거짓말까지 보태서 타인 집단을 비방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남을 비난하는 자를 현명하다거나 인격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금 의료파동의 핵심 쟁점은 소아청소년과 등의 필수의료 파탄과 지방 의료 붕괴가 아닌가 한다. 한국 의료의 평가 지표들은 (접근성, 영아 사망률, 수명, 각종 수술 성공률, 의료비 등) OECD 대비 거의 최고 수준으로 미국에 사는 교포들도 휴가를 내 한국에서 진료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던 아산병원은 세계 각국에서 수련을 받으러 오는 의사들이 줄을 이었고 보스턴 소아병원 (Harvard 의과대학)의 전공의가 실습을 나와 우리 교수진이 지도하기도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근 5년간 급격히 하락했다. 2019년까지는 정원을 채웠지만 2022년 27.5%, 2023년에는 16.6%의 지원율을 보였다. 2024년 2월에 3058명의 인턴 수료자 중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1.7%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지원자가 없으니 필수의료인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막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유례없는 낮은 출산율(2023년 0.72)과 낮은 의료수가 그리고 형사 또는 민사소송의 위험이 겹쳐 필수의료의 붕괴를 촉진하고 있다. 나의 경우 미국서 은퇴할 때까지 평생 한 번도 의료 소송에 휘말리지 않았는데 아산병원에선 근무 하자마자 3개월 이내에 몇 개의 의료 소송이 생겼다. 물론 전부 허황한 소송이었다. 한 건은 사망 진단서에 쓰여 있는 폐렴이 문제였다. 환자는 뇌종양으로 입원해 고용량 약물치료를 받아 면역성이 떨어진 상태였다. 환자 측 주장은 뇌종양 환자인데 폐렴이 생긴 건 분명 병원이 잘못한 거라고 하였다, 다른 한 건은 림프종이 의심된 환자였는데 경부 림프절 조직검사에서는 다행히 병변이 없었다. 환자 측은 병변이 없는데 왜 생검을 했느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송들이 걸려오는 풍토에선 젊은이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딱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볼 때 비용인 수가를 100%로 올려주고, 열심히 진료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형사 소송을 할 수 있게 한 현재의 법체계를 수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무시하고 필수 과에 의사가 모자라니 당장 내년부터 2000명을 증원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한 것이다.
2000년이었던 것 같다. 의약 분업 파동이 한 6주 끌었을 때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병원을 지켰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파업에 동참하는 전공의들을 적극적으로 말리며 환자 곁을 지키라고 설득했다. 그러면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전면에 내 세우며 열심히 국정을 펼쳐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번 의료파업에선 충분한 근거도 없고 당장 실현할 수 없는 2000명 의대 증원의 카드를 느닷없이 들고나와 의료대란을 자초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최고 수준의 의료시스템에 한 점 이바지한 것도 없는 그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왜 이리 서두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총리나 경제부총리, 교육부 장관 복지부 장관과 복지부 차관, 이 중 어느 한 사람도 의료 분야에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도 모르겠다. 또 그와 상담하는 국립대 총장들, 또 자문하는 의료인 (환자 진료에 경험이 전혀 없는 예방의학과 교수들) 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대통령은 각계 종교자들을 만나 파업하는 전공의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의료 정책구상엔 직접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의사의 의견을 듣는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전공의들이 자기들이 존재하는 이유로 생각하는 환자들을 떠나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에 관해 왜 직접 물어보지 않는가? 그리고 대통령은 2000명의 증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과 대학생 전원을 유급시킨다고 하고 또 전공의에 동조하는 의대 교수들도 법에 따라 불이익을 준다고 엄포를 논다. 
                     
의료인은 정부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공무원이 아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성 있는 최고의 지성인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들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하루속히 우리가 모두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표방해온 윤석열 정부가 강력한 사회주의의 카드를 들고나와 명령과 통제로 의료인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내 눈에는 이번의 의료 파탄이 정권 연장의 정치적 수단으로 보여 씁쓸하다. 한국에서 국민을 위해 의업에 종사하는 대망의 꿈을 접고 하나하나 국외로 떠나는 젊은 인재들을 보며 이들의 발길을 고국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썼다. 그리고 한국에서 자유민주의가 꽃 피우기를 바라고 쓴 졸시 <봄의 태동>을 첨부한다. 
<봄의 태동>
                      김태형
지구는 태양 향해 궤도를 튼다
햇볕 받는 시간 늘이려고
나무는 잔뜩 물을 머금는다
뿌리 닿아 새싹 틔우려고
난 오늘 기도를 할까?
자유민주주의 꽃 활짝 피우려면
2024년 3월 13일





Copyright © newsandpost.com, 무단전제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기사/사진/동영상 구입 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