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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국가 될 북한에도 건국자가 필요하다
글 · 이현승, 북한청년리더총회 대표
기사입력: 2026-06-23 15:18:35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 ▲이현승 북한청년리더총회 대표 |
| 올해 7월, 미국은 건국 250주년을 맞는다. 워싱턴 내셔널 몰의 밤하늘에는 불꽃이 터지고, 곳곳의 도시 중심가마다 행진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 문장을 다시 꺼내 읽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가만히 곱씹어 보면 지금도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어떤 정부도 주거나 빼앗을 수 없는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이 권리 중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것. 나는 그런 문장을 모르고 자랐다. 내가 자란 북한에서는 그 말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일이었다. 그곳의 국가는 사람을 다스리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의 육신과 머릿속까지 차지하려 들었다. 충성심은 강요되었고, 등급이 붙었고, 자녀에게 대물림됐다. 누구든 태어나는 순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적대 계층’으로 나뉘었고, 그 꼬리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평생 따라붙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도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면 자유로워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 나라를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뜻도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자유롭다는 것, 그 자유는 누가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것이라는 생각이다. 북한에서 이보다 위험한 생각은 없었다. 건국 250주년을 맞는 미국인들에게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1776년에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에게는 내세울 군대도, 자기들이 쓴 글 때문에 교수형을 면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들에게 더 중요했던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앞서 나가는 고집스러운 신념이였다. 나는 그 신념을 가진 이들을 직접 만나 보았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중국의 은신처를 전전하고, 붙잡히면 북으로 끌려가 죽는다는 공포를 견디며 그 신념을 품고 온 젊은이들에게서 보았다. 그들은 탈북민이고, 내가 아는 한 미국의 건국 정신을 누구보다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그 선언, 미국인들이 글로 배우는 바로 그 말을, 그들은 이미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체득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는 탈북이 탈북민 이야기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벽을 허무는 일과 그 자리에 새것을 세우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고, 필요한 사람도 다르다. 해방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해방 그 이후에는 더 귀한 것이 필요하다. 앞장서 이끌 준비가 된 사람, 법을 만들 줄 알고, 힘 있는 자와 마주 앉아도 기죽지 않으며, 나라를 막연한 상상력이 아니라 번영의 청사진으로 그려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평양 정권은 언젠가 무너진다. 그만한 공포 위에 쌓아 올리고 고립으로 운영되는 체제가 영원할 리 없다. 그날이 오면 정작 무서운 질문은 ‘어떻게 끝났는가’가 아니다. ‘그다음을 세울 사람이 준비돼 있는가’다. 자유로운 북한이 옛 권력 언저리에 가장 가까이 있던 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맛보며 자라, 외교와 국제법을 알고 나라 살림의 보이지 않는 실무까지 익혀 펜을 들 준비가 된 북한 청년 세대가 있을 것인가. 바로 그 질문 때문에 나는 북한청년리더총회(NKYLA)를 만들었다. 우리는 해마다 젊은 탈북 청년 10여명을 미국으로 부른다. 그리고 결정이 이뤄지는 자리, 곧 백악관, 미 의회, 외교관과 학자와 인권 전문가들 앞에 그들을 세운다. 나는 한때 이런 기회가 절실했지만 갖지 못했었다.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북한의 새 미래를 토의할수 있는지 몰랐다. 독재를 탈출한 사람의 증언이 미국 정치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난민이 전략가가 되고 운동가가 되며, 독재 역사에 짓밟힌 영원한 피해자가 아니라 한 나라의 건국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내게 보여 주지 않았다. 이 변화는 말뿐인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에서 ‘적대 계층’으로 태어나 자란 한 여성이, 한때는 발도 들이지 못할 줄 알았던 대학 세미나에서 ‘이 자리는 내 자리’라는 당당함으로 정책을 따지고 토론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중국에서 몇 해를 숨어 지내며 문 두드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하던 한 젊은 엄마가, 다시는 누구도 숨어 살지 않게 하겠다며 미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법을 익히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증언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믿던 사람이, 워싱턴의 정책가들 앞에 서서 목숨 걸고 감춰 온 진실을 열정적으로 증언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 중 누구도 아직 완성된 리더가 아니다. 그게 핵심이다. 이들은 지금 ‘리더가 되어 가는 중’이다. 바다 건너, 닫힌 국경 너머의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을 가질수도 있다. 솔직한 답은 미국의 건국자들이 했을 바로 그 답이다. 미국이 기리는 그 건국정신은 애초에 누구 한 사람의 것이 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 관한 선언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감옥같은 나라 안에서 지금도 살아가는 2,600만 명, 자유와 인권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유를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받을 그 사람들까지 끌어안은 선언이다. 무언가를 정말로 의미하는 250주년이라면, 한 나라의 행운을 추억하는 데서 그쳐선 안 된다. 그 말들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되새기는 자리여야 한다. 눈앞의 이해관계도 있다. 한반도의 앞날, 그 평화와 안정, 나아가 세계가 주목하는 이 지역의 미래는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북한 사람들이 준비돼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지금 그 준비에 힘을 보태는 일은 동정이 아니다. 앞을 내다보는 투자다. 나는 1776년의 그 서명을 자주 떠올린다. 한 줌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지도 못한 수백만 명을 대신해, 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대를 대신해 한 문서에 이름을 적었다. 그 서명은 시간을 건너 후대에게 건넨 믿음 같은 것이었다. 내가 함께 일하는 청년들도 똑같은 믿음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건네려 한다. 오늘도 입을 떼지 못하는 북한의 수백만 명을 대신해, 그들이 누려 마땅한 자유로운 조국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는 것이다. 이번 7월,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며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다. 축하의 테두리를 조금만 넓혀 달라는 것이다. 그 들뜬 인파에서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두려움 대신 자유를 택한 십여명의 젊은이가 자기들이 등지고 떠나야 했던 조국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구해 달라고 손 내미는 게 아니다. 가장 힘든 고비는 이미 제 힘으로 넘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어느 건국자에게나 필요한 단 한 가지, 그들이 나라 세울 채비를 하는 동안 곁에 함께 서 줄 사람들이다. 250년 전, 몇 사람이 펜을 들어 제 목숨보다 큰 약속에 이름을 적었다. 그들은 그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이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한번 든 그 펜이 손에서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로 건너가도록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지금 그 펜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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