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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현 컬럼] 영혼을 담은 그릇, 그 거룩한 청지기직을 위하여
[아들에게 쓰는 신앙서신 - 116번째 이야기]
기사입력: 2026-08-01 08:40:49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 ▲임석현 담임목사, 나눔장로교회 |
| 1. 인격이라 불리던 시절과 뒤바뀐 시대의 풍경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배가 나오고 풍채가 좋은 것을 두고 흔히 '인격이 나왔다'라며, 그것을 곧 부와 넉넉한 삶의 상징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 여유로운 신체는 곧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평안한지를 보여주는 척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급변했다. 대략 2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다이어트 열풍은 이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과거 '인격'이라 불리던 그 넉넉함은 이제 '관리되지 못한 무절제'의 낙인이 되어버렸고, 세상은 이제 마른 몸을 미의 기준으로 세우고 먹는 즐거움과 절제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강요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목회자의 삶은 하나님이 맡기신 육체라는 성전을 정결히 지키며, 그 삶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복음이 되어야 하는 여정이다. 아버지가 먼저 걸어온 이 절제의 훈련이 훗날 동역자들과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사역의 현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중심을 잡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도하며, 이 시대의 풍요와 절제에 대하여 묵상한 바를 적어 내려간다. 2. 이민자의 식탁과 오늘날의 기형적인 풍요 돌이켜보면, 한때 이민자의 고단한 삶 속에서 우리의 유일한 낙은 일을 마친 후 몇몇 가정이 모여 수다를 떨며 고기를 굽고, 지난날의 고생을 추억하며 나누던 식탁에 있었다. 그때의 식탁은 그저 배를 채우는 장소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서로의 삶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던 따뜻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한인 사회가 점차 자리를 잡고 풍요로워지면서, 역설적이게도 그때의 그 소박하고 끈끈했던 나눔의 정취는 사라지고 자극적인 미식과 과도한 섭취,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불안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만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8).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족함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식탁은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특히 미국이라는 땅은 음식이 너무도 풍성하여 남는 음식을 쓰레기로 처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에 필요한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지구 한쪽에서는 먹지 못해 생명을 잃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한 섭취로 생명을 갉아먹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이 기묘한 풍요는 우리 삶의 풍경도 바꾸어 놓았다. 주변에는 피트니스 센터가 즐비하고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보험사에서 그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과도한 영양 섭취로 살이 찌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살을 빼기 위해 다시 돈을 들여 운동시설을 찾는다. '먹고, 찌우고, 다시 빼는' 이 악순환이 우리 일상의 표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해 생긴 문제를 다시 인위적인 비용과 시설로 해결하려는 이 모습은, 목적지를 잃고 창조주를 잊은 채 자신의 몸을 우상화하는 현대인의 실존을 그대로 보여준다. 3. 수탈의 역사와 인본주의적 구원론의 허구 이러한 현상을 보며 나는 고대 로마의 타락한 만찬 문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귀족들은 피정복지에서 수탈한 부를 바탕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로운 만찬을 즐겼다. 그들은 더 많은 음식을 탐하기 위해 배가 부르면 소화제를 먹고 음식을 토해내는 행위를 반복했는데, 그 식탁은 땀 흘려 얻은 소중한 대가가 아니라 타인의 피와 고통을 수탈하여 마련한 부도덕한 탐식의 결과였다. 오늘날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위고비'나 '마운자로'와 같은 소위 기적의 다이어트 치료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병원들마다 이 약의 처방을 홍보하고, 주사를 맞고 확실한 효과를 보았다는 입소문이 적지 않게 들려왔다. 그러나 성실한 자기 절제라는 신앙적 과정을 생략한 채 오직 결과만을 손쉽게 얻으려는 인본주의적 욕망은 예상치 못한 대가를 가져왔다. 최근 이 약의 부작용으로 췌장이 괴사하거나 장기가 손상되는 등 치명적인 고통을 겪는 사례들이 보도되고 있다.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인간 스스로의 지혜와 기술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인본주의적 구원론'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질서와 훈련의 과정을 거부하고, 기적의 주사를 통해 단번에 결과를 얻으려는 오만은 결국 우리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19-20). 우리의 몸은 내 마음대로 조작해도 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자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4. 자기 고백과 소명자의 거룩한 불편함 사실, 이 엄중한 질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나 역시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을 끊어놓고 가끔 이용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것이 마치 건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인 양 착각 속에 살았던 적이 있다. 개혁주의 신학은 우리에게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나는 내 육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전으로 관리하기보다, 세상의 풍요와 기준에 맞추는 데 더 급급했다. 이런 풍요와 혜택을 누리면서도 정작 주어진 몸을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은, 굶주림이 일상화된 나라들의 현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비만은 단순히 신체의 부피가 늘어난 현상이 아니라, 내 안의 탐욕과 '절제되지 못한 삶'이 육체로 드러난 증거였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귀한 위탁물(Stewardship)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7)라고 고백했다. 육체를 다스리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주어진 분량을 감사히 먹고, 매일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거룩한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가 맡은 청지기직의 핵심이다. 이 그릇을 외부의 약물로 억지로 조작하여 관리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섭리를 거스르는 오만이며 인내를 거부하는 인간의 조급함일 뿐이다. 진정한 치유는 고통을 피하는 지름길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식탁 앞에서 감사하며, 넘치는 유혹 속에서도 스스로를 멈추게 할 줄 아는 '절제의 훈련'에서 시작된다. 기도의 자리에서 깨달은 것처럼, 나는 이 글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역에 임하고 있는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이 시대를 함께 고민하는 모든 독자에게 도전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빚으시고 우리에게 관리를 위탁하신 이 소중한 육체를 다시금 거룩하게 가꾸어 가자. 5. 아들에게 전하는 소명자의 당부와 결단 사랑하는 아들아, 이 글을 읽게 될 훗날 네가 아버지와 같은 목회자의 길에 서게 될 때, 세상의 화려한 풍요와 인본주의적인 유혹 앞에서 결코 길을 잃지 말아라. 목회자의 삶은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맡기신 육체라는 성전을 정결히 지키며 그 삶 자체가 복음이 되어야 하는 고독하고도 거룩한 여정이다. 아버지가 먼저 걸어온 이 절제의 훈련이 네가 사역의 현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중심을 잡는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혹여 이 글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매일의 식탁을 채우는 것조차 버거운 분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은 풍요의 끝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의 방종을 꾸짖고자 함이지, 생존의 고단함을 겪는 이들의 짐을 무겁게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넘치는 풍요를 바로 다스릴 때, 그 절제의 결실이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흘러갈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인본주의를 넘어, 약속의 땅을 걷는 소명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제시하는 편리하고 신비로운 처방에 눈 돌리지 않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인 '절제'를 훈련하며, 비록 더디고 고단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 오늘도 나는 넘쳐나는 풍요의 유혹 앞에서, 주께서 내게 맡기신 이 그릇을 정결하고 강건하게 지켜내기로 다짐한다. 세상의 기술이 육체의 편리함을 약속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참된 절제의 아름다움을 증명해 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이 거룩한 몸을 온전히 지켜내는 참된 소명자로 서기를 기도한다. 이것이 곧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자, 내가 너와 모든 동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명자의 길이다. 2026년 7월 20일, 위고비 부작용에 관한 방송을 보며 절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조지아주 애틀랜타, 나눔장로교회를 담임하며 사역하는 임석현 목사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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