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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증거자료 또 발견
올해는 윤치호 선생 에모리대 졸업 120주년
기사입력: 2013-06-18 08:39:30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라는 자료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17일 뉴시스가 보도했다. 이번 자료는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이 수집한 것으로, 한국을 소개하는 영문책자에 기록된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6·25전쟁 직후 1954년 11월 미국에서 발간된 한국 소개 영문 소책자 ‘한국 입문(Introduction to Korea, 한국태평양출판사)’에 윤치호(1865~1945)가 애국가 작사자로 인쇄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책에는 악보와 함께 선명하게 윤치호를 작사자로 표기했다. 이 책자는 한국 홍보용 자료로 제작된 것으로 이현표 전 주미 한국 대사관 문화홍보원장이 수집했다. 이승만 대통령 고문을 지낸 올리버 박사가 운영한 한국태평양출판사는 당시 한국 정부의 대미(對美) 홍보 창구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 LA종우서관이 펴낸 ‘세계명작가곡집’(1931년), 미국 적십자사가 펴낸 ‘National Anthems’(1952년) 등 윤치호를 작사자로 기록한 애국가 악보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윤치호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윤치호설’ 옹호론자들은 “윤치호는 1907년 애국가를 작사했고, 1908년 발행한 ‘찬미가’를 통해 보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창호설’ 옹호론자들은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했으며, 도산이 평양에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앞장서 보급했다”고 밝혀 왔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55년 윤치호 단독 작사설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 11, 반대 2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해 유보됐다. 올해는 윤치호가 에모리 대학을 졸업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애틀랜타 거주 한인 1호로 알려져 있는 윤치호는 지난 1893년 6월 14일 에모리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에모리대학 최초의 외국인 유학생으로 기록되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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