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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원회 위원장, 한때 경찰 죽인 흑인단체 동조
분열주의 단체 RNA 변론…RNA 부회장 출신 시장 출마하자 선거캠프서 뛰어
기사입력: 2021-10-05 19:42:39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1월6일 의회사건을 조사하는 1월6일 위원회의 베니 톰슨(Bennie Thompson,민주·미시시피) 하원의원은 그동안 1월6일 사건을 반란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그날 부상당한 경찰관들에게 동정을 표했다. 심지어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71년 작은 미시시피 지역사회의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의원이었던 톰슨은 정반대 편에 서서 경찰을 살해하고 FBI 요원에게 부상을 입힌 '뉴 아프리카 공화국'(Republic of New Africa)이라는 분리주의 단체에 공개적으로 동조하고 기자회견에 참여했었다고 저스트더뉴스가 보도했다. 톰슨은 자신의 공식 소개글에는 RNA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70년대 FBI 첩보는 RNA가 미국에 대한 '게릴라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RNA와 그 구성원에 대한 톰슨의 애정은 2013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고 저스트더뉴스는 지적했다. 그는 이 단체의 전직 부회장이 미시시피에서 가장 큰 도시의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했었다. 톰슨 의원의 RNA에 대한 옹호는 주정부와 FBI 및 지방 경찰청 기록에 문서, 신문 스크랩, 동영상 등으로 남아있다. 이는 반세기 전 극좌파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민주당의 기득권층 지도자인 그의 면모를 보여주며, 이제 현대 워싱턴의 광란에 야유를 퍼붓는 그의 행위를 묘하게 반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톰슨의 민주당 동료인 하원의원 바비 러시(Bobby Rush,민주·일리노이)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인 1968년 일리노이에서 극단주의 블랙 팬더스(Black Panthers) 지부를 공동 창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RNA와 블랙 팬더스는 모두 반란을 지지한다고 공언했으며, 1967년에는 무장한 블랙 팬더스가 캘리포니아 주의 의사당을 습격한 바 있다. 베니 톰슨은 가장 오래된 하원의원들 중 한 명이고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1월6일 위원회를 이끌도록 임명됐을 때 트럼프에 대한 NAACP 소송을 지지했던 것을 취하했다. 1971년 당시 하원의원은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당시 신문에서는 그를 미시시피 볼튼(Bolton) 지역의 "앨더맨 BG 톰슨"이라고 불렀다. 볼튼은 톰슨이 RNA를 알레된 곳이다. 그는 그 단체와 얽혀서 기소를 당한 적은 없지만, 법집행 서류가 그 그룹이 어떻게 폭력과 관련돼 있고 전쟁 훈련을 시키고 있었는지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RNA 조직원들의 편에 섰다. 당시 톰슨의 행적을 기억하는 전직 연방법집행관들과 미시시피 주 공무원들은 톰슨이 RNA를 통오하고 경찰을 비판했던 것을 기억했다고 저스트더뉴스는 보도했다. 저스트더뉴스는 역사 기록 보관소와 FBI로부터 동영상, 신문 스크랩, 법 집행 문서를 입수해 상세히 전달했다. RNA는 1968년 미시시피에선 수백 마일 떨어진 디트로이트에서 설립됐는데, 1969년 경찰과 첫 대규모 나누극이 벌어져 결국 한 경관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 조직원들은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톰슨은 전혀 이 총격과 관련이 없다. 1971년경, RNA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미 동남부에 '새로운 아프리카' 국가를 건설하겠다며 그 수도를 톰슨의 고향인 미시시피주 볼튼에 두겠다는 계획이 추진됐다. 당시 RNA는 볼튼에 20에이커 규모의 농지를 매입하려 했고, FBI는 이를 지속적으로 감시했다. 1971년 봄, 미시시피 사법당국은 RNA의 한 구성원이 도난당한 차를 타고 볼튼을 여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제보를 받았다. 한 무리의 경찰관들이 RNA 조직원들과 마주쳤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탈주범과 차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그룹의 많은 멤버들은 보석으로 묶여 있었다. 톰슨과 한 주의원은 체포 후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한 명은 비디오로 찍혀 미시시피 기록물사부에 보존돼있다. 톰슨은 RNA를 추적한 법 집행에 대해 비난하는 데 앞장섰고, 경찰관들이 "종종 헌법상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때리고 발로 찼다"고 주장했다. 당시 기록 영상물에서 톰슨은 "이 문제에 있어서 내 가장 큰 관심사는 볼튼 마을에 거주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법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공평하게 대우받는 것"이라며 "뉴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사법방해죄로 기소됐다. 나는 이것이 사법 당국자들의 일부가 공화국이 커뮤니티를 건설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톰슨은 이 단체가 법을 준수한다면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톰슨이 그런 말을 했을 때, FBI는 이미 그 단체가 여러 건의 폭력 범죄를 저질렀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위한 분리주의 새 국가를 만들기 위해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앨라배마,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등의 주들을 장악하겠다는 명시적인 계획을 세워 국가 안보 위협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당시 힌즈 카운티 보안관을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 저항에 부딪혔고, 그 단체의 시설 안에서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발견했다. 몇 달 뒤인 1971년 8월, FBI와 잭슨 경찰이 RNA 조직원들의 은신처를 급습하면서, 경찰관 한 명이 사망하고 또 다른 경찰관과 FBI 요원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잭슨 경찰국 기록에는 현장에서 FBI는 평화롭게 항복할 수 있도록 75초의 시간을 준 다음, RNA 조직원들을 쫓아내기 위해 최루탄 하나를 집 안으로 쏘았다. 이후 집안에서 즉각 불이 났고, 격렬한 총격전이 이어졌다. 톰슨은 또 다시 그 단체의 변호를 맡았다. 1971년 8월28일자 AP 기사는 "흑인들이 경찰을 고소하다"라는 제목으로 톰슨이 RNA를 지지하기 위해 정의단체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하고 잭슨의 흑인사회 지도자들과 합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흑인 지도자들이 긴장 완화를 촉구한 반면, 톰슨의 새 단체는 RNA의 문제에 대해 경찰을 비난하며 더 단호한 모습이었다. 기자회견에서 톰슨 옆에 있는 한 연사를 경찰이 "몇 명의 검둥이들을 죽이러 나왔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기밀 해제된 FBI 문서들은 RNA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우려를 기록한다. 1969년 3월 FBI의 메모는 RNA를 "미국 내에서 흑인 국가를 형성하고 적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흑인 군대를 형성하는 것이 목적인 흑인 극단주의 분리주의 조직"이라고 묘사했다. 2013년, RNA의 전 부회장이었던 초크위 루뭄바(Chokwe Lumumba)는 미시시피주 잭슨 시장에 선출됐는데, 당시 톰슨은 선거운동을 도왔다. 톰슨은 루뭄바의 시장 취임식에서 주례를 섰다고 저스트더뉴스는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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