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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애틀랜타의 기묘한 인연
윤치호와 언더우드로 연결되는 ‘조선 선교’의 결실
기사입력: 2026-09-16 12:49:52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 밀턴시에 위치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물. 2026.8.30. [뉴스앤포스트/홍성구] |
|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과 동상이 조지아주 애틀랜타 한인타운에 마련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애틀랜타와 이승만 대통령간의 인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지아주의 부촌으로 유명한 밀턴시에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부지와 건물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뉴스앤포스트를 통해 보도되자, 일각에서 이 대통령이 활동했던 무대인 하와이 같은 곳이 아닌 애틀랜타가 무슨 관련이 있기에 기념관에 동상까지 건립하느냐는 의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애틀랜타의 인연을 언급하자면, 먼저 1891년부터 1893년까지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모리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했던 윤치호를 언급해야 한다. 조선 선교의 불을 지피다 애틀랜타 한인 1호, 에모리 대학교 최초의 외국인 유학생인 윤치호는 1892년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 주최로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대규모 선교집회에서 당시 북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조선에 선교사로 활동중이었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를 만났다. 집회에서 언더우드는 조선의 문이 열렸다는 점을 알리면서 조선 선교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윤치호 역시 같은 집회에서 조국의 복음화와 선교사 파견을 호소했다. 이 집회는 미국 교회 청년들에게 한국 선교에 대한 큰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윤치호는 에모리 대학 재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여름 방학마다 미국 농촌 교회들을 돌며 선교 강연을 했고, 이때 아껴 모은 200달러를 당시 에모리 대학 총장이었던 워런 캔들러(Warren A. Candler) 박사에게 기탁하며 "조선에 기독교 학교를 세워 선교를 시작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윤치호가 에모리 대학 총장에게 맡긴 200달러와 내슈빌 대회의 감동은 미국 남감리회가 공식적으로 한국 선교를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과 언더우드 이승만 대통령은 1895년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 정동 지역에서 활동하던 언더우드 선교사를 처음 만났다. 언더우드가 윤치호를 만난 뒤에 벌어진 일이다. 배재학당은 1885년 언더우드와 함께 조선 땅을 밟은 헨리 게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가 세운 학교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미국 북감리교회 해외선교부(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파송을 받았다. 1899년 이승만이 박영효 쿠데타 음모 사건(고종 폐위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자, 언더우드는 아펜젤러 등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고종 황제에게 이승만의 석방을 끊임없이 청원하며 구명 활동을 펼쳤다. 옥중 생활을 도운 윤치호 당시 대한제국의 지방관으로 덕원감리(외교관) 겸 덕원부윤(행정수장)과 원산항재판소 판사 직을 겸임하고 있었던 윤치호 역시 이승만의 조기 석방을 위해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는 등 적극적인 구명 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옥중에 있는 이승만에게 책을 차입해 주며 그의 학업을 돕기도 했다. 윤치호는 조정 내 장로·감리교 인맥 및 친분이 있던 간수장(이중진 등)들을 통해 이승만이 감옥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전도하고, 수감자들을 모아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칠 수 있도록 공간적·제도적 편의를 봐주도록 유도했다. 이승만은 옥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뒤 옥중학당을 개설했는데, 이승만의 주선 덕분에 언더우드 선교사도 감옥 내에서 수감자들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어쩌면 이승만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윤치호가 미국 땅에서 외쳤던 '조선 선교'의 첫 열매였는지도 모른다. 미국행 도운 언더우드와 윤치호 1904년 이승만이 사면으로 출옥한 뒤 미국 유학을 결심하자, 언더우드는 워싱턴, 뉴욕, 시카고 등 미국의 주요 교회 지도자들과 정계 인사들에게 보내는 친필 추천서 8통을 직접 작성해 주었다. 이 추천서에서 언더우드는 이승만을 "조국을 위해 위험한 발언을 하다 투옥되었던 한국의 우수한 기독교인"으로 소개하며 그에게 학업 기회와 조언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이 추천서는 이승만이 조지워싱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미국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지지 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구국운동을 벌이는 동안, 윤치호는 조선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후손들과 한글 종교 서적과 찬송가 보급, 번역 사업에 대해 긴밀히 소통했다. 언더우드가 설립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는 에모리 대학교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1941년), 일제의 압박과 탄압이 극에 달해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들인 원한경(Horace Horton Underwood) 박사가 강제로 제3대 교장직에서 쫓겨나고 학교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윤치호가 연희전문학교의 제4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의 명맥을 지키고 이끌었다. 이승만과 윤치호와 애틀랜타 이승만과 윤치호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윤치호는 1945년 12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이승만에게 "당신만이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끌 유일한 지도자이니 끝까지 조국을 지켜달라"는 취지의 지지 편지(유언)를 남겼다.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모리 대학교에 윤치호가 유학을 왔던 일을 계기로, 윤치호는 이승만의 옥중 생활을 매우 의미있게 만들도록 지원해줬고, 윤치호와 함께 조선 선교의 중대성을 외쳤던 언더우드는 이승만이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오르도록 이끌어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게 애틀랜타는 알려지지 않았던 지원의 근원지였던 것이다. 2026년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이념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념으로 무장한 반국가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수많은 한국 국민들이 이에 대항해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왔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승만의 건국정신을 기리는 일이 애틀랜타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애틀랜타의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은 올해말 개관을 목표로 단장 중에 있다. 애틀랜타 한인회관에 들어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동상은 10월 1일 제막식을 갖는다. 홍성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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